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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구드/구드말리온] 패션으로 승화된 명성황후

몇 해전 파리의 시내 곳곳엔 한복을 입은 동양 여성의 광고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진 속 여인은 머리에는 서양식 왕관을 쓰고 있고 손에는 일본 검을 쥐고 있었는데요. 이 사진은 당시 파리 라파에트 백화점 메인 광고 사진으로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 광고판을 차지했습니다. ‘Queen of Seoul(서울의 여왕)’이라는 이름의 그 광고 사진을 만든 이는 사진 계의 거장이자 예술과 광고의 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 시대의 최고의 상업 아티스트라 불리는 장 폴 구드(Jean Paul Goude)인데요. 그의 농축된 크리에이티브를 완연히 느낄 수 있는 장 폴 구드의 회고전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장 폴 구드의 '구드말리온'

색다른 느낌의 광고로 인기를 끌었던 그 작품은 4-5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파리지엥의 감성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번엔 거리 광고판이 아닌 전시장에서 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그가 만들어 낸 많은 광고물과 사진 작품, 패션 오브제, 설치작품까지 그가 작업했던 수많은 창작물을 흠뻑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새로운 파리의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장 폴 구드라는 이름이 낯선 이에게도 그의 작업은 익숙할 텐데요. 파리지엥 중 그의 작업을 보지 못 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70년대 이후 그의 작업이 파리 시내에 또는 TV광고에 잡지에 실리지 않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요. 매 시즌 바뀌는 수 많은 패션 광고들이 그의 손을 거쳐서 파리 구석 구석의 광고판을 메우고 파리지엥과 파리를 찾은 수 많은 관광객들은 의도적이던 의도치 않던 그 것에 시선을 두기에 그의 작품은 파리지엥에게 친숙합니다.
올해로 71세를 맞은 그는 변함없이 젊은 크리에이티브 힘을 뽐내며 40년간 꾸준히 가장 사랑 받는 패션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시는 단순한 사진 전시가 아닌 예술과 상업미술을 교묘하게 넘나드는 그의 작업처럼 하나의 현대미술전을 보듯 창의적으로 꾸며졌습니다. 그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그의 작업을 동일선상에 전시 함으로서 그의 작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으며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볼거리는 그가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유쾌한 이야기에 연극적인 요소를 첨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집중도를 유지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Queen of Seoul

한 공간은 ‘Queen of Seoul’에 관한 작업 전시를 위해 따로 마련해놓았는데 이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이 작품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는 지 볼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의 동양모델을 두고 여러 테마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한복을 입은 모델의 사진입니다. 그 테마는 명성황후로서 왕관은 왕비를 직접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며 그녀가 손에 든 칼은 다름아닌 일본병사의 칼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역사 속에서는 그녀는 살해되었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는 폭력에 저항한 채 칼을 뺏어 든 것입니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사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어두웠던 이미지를 걷어내고 아이러니하고도 가볍게 풀어내고자 하였습니다.


장 폴 구드의 유쾌함

그는 인종, 역사에 관한 작업을 자주 주제로 선택하곤 하는데 작업을 통해 그 것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만의 시각적인 작업으로 풀어내고 또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역사나 인종 등 그가 다루는 그의 작업의 시작점은 다소 무거울 수 있으나 그의 창작 필터로 걸러내서 나오는 그의 작품은 진지하지만 가볍고 산뜻한데요.
그의 ‘Queen of Seoul’시리즈의 작업 스케치를 보면 동양 여성의 얼굴을 동그란 달처럼 묘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동그랗고 찢어진 눈은 서양 사회에서 동양인을 비하할 때 쓰이는 특징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그는 그 특징을 더더욱 강조 시킴으로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고, 그의 유쾌한 애정은 그의 사진으로 느껴집니다. 실제로 전시장을 찾은 많은 프랑스인들은 그 사진 시리즈를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동양인 모델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한국계 미국인 아내이기도 하여 화제를 모았죠.
그의 작업은 어디에서나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이번 전시는 그의 첫 번째 회고전입니다. 그의 전시 타이틀이자 그의 별명인 ‘구드말리온 Goudemali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인 피그말리온 에서 따온 말리온과 그의 이름 구드를 붙인 것)처럼 그가 창조하고 그도 반해버린, 그리고 온 세계 패션계가 반해버린 그의 작품은 이 전시가 끝나도 파리 뿐 아니라 세계 곳 곳의 광고판에서 우리의 감성을 흔들 것입니다.

파리통신원-임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