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밤공기가 어딘지 모를 곳으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리게 하고, 서늘한 아침공기가 밤새 덮고 있던 이불의 감촉을 더욱 포근하게 만드는 것. 바로 가을이 가까워 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징후들입니다. 낮아진 기온만큼 따뜻한 온기를 필요로 하는 마음은, 가슴 설레게 하는 낭만적인 것들을 찾게 만드는데요. 빛깔을 달리하며 점점 바뀌어가는 가을의 풍경 속을 거니는 것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낭만적인 영화를 다시 한번 꺼내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빛나는 청춘이거나 혹은 세기의 로맨스이거나. 다시 가슴 뛰고 싶은 계절, 낭만적이 프랑스 영화 속 장면들을 리플레이 해보려고 합니다.
내일이 두렵지 않은 청춘들의 풍경
최근 10년만에 다시 국내에서 개봉해 재관람 열풍이 일으켰을 정도로, 프랑스 영화 <몽상가들>은 지금의 세대에게 여전히 ‘청춘’이라는 단어를 이상적으로 그려낸 청춘영화입니다. 1968년의 봄, 자유를 외치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거리에서, 미국인 유학생 ‘매튜’는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를 파리의 시네마테크에서 만나게 되는데요. 이들은 영화와 음악, 책과 혁명 등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나누며 점점 가까운 사이로 발전합니다.
영화 <몽상가들> 속에는 사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 찰리 채플린 주연의 영화 <시티 라이트> 등 12편의 영화가 오마쥬로 담겨 있다는 비밀아닌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손꼽히는 명장면은 다름아닌 고다르의 <국외자들> 속 주인공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통과하며 경주한 9분 45초의 기록을 깨기 위해 매튜와 이사벨, 그리고 테오가 손을 잡고 뛰어가는 장면인데요. 세기의 명화 속 인물들이 숨 죽인 듯 걸려있는 조용한 박물관을 가로지르며 신나게 달려나가는 3명의 청춘들. 그야말로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가장 낭만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속 명장면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을 영화 <라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라붐>은 파리로 전학 온 13살 소녀 ‘빅’이 즐거운 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입니다. 어느 날 친구들의 초대로 가게 된 파티에서 남학생 ‘마티유’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요. 마티유가 흥겨운 디스코 음악에 빠져 있는 친구들 틈을 헤치고 다가가 ‘빅’에게 헤드폰을 씌워주는 장면은 영화사에 남는 로맨틱한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 속에 흐르는 음악은 바로 Richard Sanderson의 ‘Reality’라는 곡입니다. 헤드폰을 쓰자 순식간에 시끄럽던 공간이 낭만적인 곳으로 변하는 마법 같은 장면은 이후 사람들에게 길이 기억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장면은 이후에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한국영화 <써니>에서도 이 명장면의 패러디한 씬을 볼 수 있는데요. 영화 <라붐>은 지금도 모델과 배우, 영화감독으로 여전히 활약중인 소피마르소의 아름답고 앳된 미모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연기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소피 마르소라는 배우를 일약 스타덤에 올리기도 한 작품입니다. 아직 어리숙하고 서툴지만, 그만큼 가슴 뛰는 청춘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라붐>은 최근 국내에서 ‘첫’개봉을 하기도 했는데요. 변하지 않는 클래식 영화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캔디처럼 달콤한 가슴 뛰는 러브 스토리 |
작은 꼬마들이 빗 속에서 키스를 나누는 깜찍한 포스터가, 이후 펼쳐질 달콤한 로맨스 암시했던 영화 <러브 미 이프 유 대어>.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두 남녀의 사랑을 그려냈습니다.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 폴란드 소녀 소피가 같은 반의 남자아이 줄리앙에게 회전목마 모양의 사탕 상자를 내밀며 내기를 걸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단순히 장난처럼 시작되었던 이 내기는 그들이 성장할수록 점점 거칠어지고 수위가 높아지는데요. 그러면서 두 남녀 사이에도 묘한 감정의 기류가 흐르게 됩니다.
오랜 시간 그들 사이에 이어져온 장난 같던 내기는 급기야 줄리앙의 결혼식에 소동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각자 다른 사람과의 삶을 꾸리게 된 두 사람의 내기는 잠잠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끌림에 이끌려 두 사람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회전목마 사탕상자를 건네며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랑게임이자 마지막 내기가 시작됩니다.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한 낡은 사탕상자는 그들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데요. 마치 훗날 맺어질 사랑의 결실을 예고라도 하듯, 아직 어린 두 사람이 사탕상자를 끌어안고 키스하는 장면은, 단연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깜찍한 숏커트가 사랑스러운 프랑스 여배우 오드리 토투가 주연한 영화 <아멜리에>는 보는 내내 행복한 기운이 샘솟는 영화입니다.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영화 내내 등장하는 컬러풀한 소품들과 배경들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데요. 몽마르트의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아멜리에’는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영국의 다이애나비의 사망소식을 듣고 남들은 알아채지 못할 작은 행복을 나눠주며 살아가기로 결심하는데요. 40년 전 장난감의 주인을 찾아준다거나, 오래된 고깔 인형과 함께 세계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아멜리에가 벌이는 모든 일들이 몰래 벌어지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듭니다.
그런 그녀의 행적들은 사랑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았는데요. 기차역의 즉석사진 부스에서 사람들이 찢어버린 사진들로 사진첩을 만드는 남자 ‘니노’에게 사랑에 빠지면서, 그의 행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이 역시 마치 범인을 추적하는 추리영화처럼 긴박함을 자아냅니다. 그렇게 마음을 간지럽히던 이야기는 니노와 아멜리에의 만남이 임박하면서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이 영화의 명장면 역시 두 사람이 마주치는 순간과 사랑을 이룬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발랄한 기운으로 가득찬 영화 분위기만큼, 마지막 장면 역시 사랑스러운 연인의 모습의 행복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곧 가까워질 가을, 계절에 걸맞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빠져볼 수 있는 프랑스 영화 속 명장면들을 만나보았는데요.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전세계의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그만큼의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조금 더 특별한 이야기 혹은 청춘들의 자유로운 모습들을 그려낸 작품 속에서 평범한 일상에 비타민 같은 자극을 받기도 하는데요. 이 계절, 단지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타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이 주인공인 낭만적인 풍경이 현실 속에서 그려지기를 바래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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