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에 의해 암묵적으로 금기되는 주제를 과감하게 제시한 파격적인 소재의 소설. 그래서 출간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함부로 범접할 수 없었던 세기의 문제작이 있습니다. 최근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인 드니 디드로의 <수녀> 인데요. 영화 <베일을 쓴 소녀>의 원작으로 알려진 이 소설과 작품이 출간된 배경에 대해 루이까또즈 블로그 구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립니다.
소설로 승화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항 |
1700년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였던 드니 디드로. 그가 살아있는 동안 쓴 많은 저서들이 있지만 정작 출간 시기는 그가 죽은 후 몇 년 후였습니다. <수녀>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소재와 스토리의 파격성으로 인해 시대적 상황과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발간하기까지 꽤 우여곡절이 많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저서가 발간된 이후로 작품은 수면 위에 올라오지 못하고 금서로 지정돼 오랜 시간 그늘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수녀>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수녀가 될 마음이 없었던 어린 소녀가 가족들을 비롯한 외압에 의해 억지로 수녀원에 들어가고 그곳을 탈출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파산하게 된 가족들은 어린 소녀 쉬잔 시모넹을 억지로 수녀원에 집어넣게 됩니다. 처음에 수녀원에 들어갔던 이유는 언니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이후 자신이 외도에 의해 태어난 혼외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엄마의 죗값을 대신 치르라는 미명하에 수녀원에 감금되다시피 갇히게 됩니다. 수녀원에서의 생활 역시 원만치 못하고 갖은 핍박과 편애 등을 겪으며 탈출에 대한 열망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크루아마르 후작에게 자신의 과거를 알리며 도움을 구하는 편지 형식의 이 소설은 당대 프랑스 문단의 전통적인 소설 기법을 떠나 형식을 새롭게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문학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성스러우면서도 비밀스러운 공간인 수녀원에 대한 제도적 비판과 종교성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세세하고 적나라한 묘사는 프랑스 사회에 큰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초판이 금서로 지정된 이후 1960년대에 영화로 제작된 바 있으나 소설의 파격성으로 인해 상영 금지 판결을 받기도 했는데요. 종교적 제도와 봉건적인 사상에 대한 도전 의식이 유럽과 종교권에 의해 커다란 반항으로 여겨졌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일 것입니다.
소설에서 영화로 |
세기의 금서로 여겨지던 소설 드니 디드로의 <수녀>는 2014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300년 가까이 금기시되던 시간 끝에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드니 디드로의 소설 속 파격성과 그 배경에 대한 관심 역시 함께 주목 됐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과 <베일을 쓴 소녀>의 감독 기욤 니클루가 영화화하기까지의 과정이 많이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드니 디드로의 가정은 엄격한 가톨릭 집안이었습니다. 드니 디드로의 아버지는 엄격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장남인 드니 디드로와 그의 여동생은 각각 수녀원과 수도원에 들어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수회의 수도사로 들어가려던 그는 신앙심 대신 문필업으로 전환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아버지와의 극한 불화를 겪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드니 디드로의 여동생은 수녀원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으로 죽기도 했는데요. 부모가 가진 사상이 주입되기를 거부했던 그는 이러한 원치 않는 수도 생활과 종교성에 대한, 그리고 강압적인 봉건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야를 가지게 됐다고 합니다. 계몽주의 사상가인 만큼 반봉건적 서적을 출간하며 역사적으로는 문헌적 가치를 가지는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나 당시에는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감독 기욤 니클루 역시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면서 드니 디드로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지게 된 신앙과 종교관에 대해 고민과 방황을 거듭해왔다고 하는데요. 사춘기 시절 만난 드니 디드로의 소설 <수녀>는 그의 종교적 관념을 크게 변화시켰고 이로써 그의 인생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오늘날의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감독 역시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 <수녀>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며 <베일을 쓴 소녀>에 대하여 남다른 애정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누군가의 외압에 의한 사상과 이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관점을 가지게 된 철학자 드니 디드로, 그의 작품은 계몽주의 사상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며 종교적 문제성을 뛰어넘어 봉건적 사상의 허점을 드러내는 큰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이를 영화화 한 감독 기욤 니클루는 원작 작가의 소설 속 예리한 통찰력을 여과 없이 완성하는데요.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큰 영향력을 가진 원작만큼이나 앞으로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지가 주목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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