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쾌하고 묵은 먼지의 냄새, 하지만 깊이가 있는 냄새. 추억이란 단어에 냄새가 있다면 이것보다 어울리는 냄새는 없을 것입니다. 오래된 종이와 책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는 과학적으로는 그저 곰팡이 냄새일 뿐이지만, 빛 바랜 종이가 주는 냄새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데요. 지금 파리에서는 매년 고서적&종이 박람회(Salon du livre et Papiers Anciens 2013)를 통해 추억의 향기와 보물,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고서적 종이 박람회의 활성화 |
파리의 북서쪽, 파리 17구 중심에 있는 에스파스 샴페헤(Espace Champerret)에서 열린 이번 고서적&종이 박람회는 매년 봄과 가을, 두 번씩 열리는 정기 행사입니다. 이 박람회는 ‘조엘 가르시아 협회’에서 주최된 행사로, 1974년을 시작으로 올 해 68회째를 맞이하였는데요. 1969년부터 고서적과 앤틱 미술품, 오브제 등을 전시하는 박람회 주최 인사로 활동한 조엘 가르시아는, 유명해진 후 자신의 이름을 딴 협회를 만들어 현재까지 파리의 예술과 문화 관련 다수의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사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고서적을 다루는 박람회와 전시회, 시장은 매우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파리에서도 이 박람회를 비롯한 여러가지 고서적 박람회가 열리고 있으며, 또한 주말 고서적 시장도 특성화되어 발달했는데요. 크기로 비교하자면 매년 그헝 팔레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고서적 박람회에 미치진 못하지만, 에스파스 샴페헤에서 열리는 고서적 박람회는 긴 역사와 프랑스 내 참가자들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 때문에 가장 전통적인 고서적 박람회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또한 합리적인 가격대와 켜켜히 쌓여있는 고서적 중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가지고 있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박람회입니다.
세월을 감상하는 추억의 공간 |
‘새로운 물결, 60년대(la Nouvelle Vague, les Annnées 60)’라는 주제로 행해진 이번 박람회는 3000미터 제곱 크기의 전시장에 약 200여 개의 부스로 채워졌습니다. 고서적뿐 아니라 신문, 엽서, 우표, 사진, 판화, 캘리그라피 작품 등 오래된 종이에 관련된 수 많은 목록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데요. 비록 주제는 60년대 누벨 바그 시대에 맞춰졌지만, 100년이 훌쩍 넘어간 시대의 종이 등 다양한 전시품들을 역시 전시되어 있습니다.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서일까요, 박람회에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나이가 지긋이 있으신 중년, 노년층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젊었을 때로 돌아간 듯, 옛날 신문이나 잡지, 책 등을 넘겨보며 소중한 보물을 찾은 듯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젊은 관람객들에게는 60, 70년대 보그 잡지나 라파에트나 쁘렝땅 같은 백화점 카달로그 등이 인기 있는 주요 품목이었는데요. 이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온 고서적 수집가들이 판매자와 흥정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낡은 종이가 사람의 손길을 거쳐 바스락대는 소리와 코 끝에 배어드는 오래된 책의 냄새만으로도 사람들을 편안하게 이끄는 곳이 바로 고서적 박람회의 특징입니다. 현대에 들어와 종이로 된 신문보다는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 사람들은 소식을 접하고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ebook을 읽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종이 위에 적혀진 것들을 더 신뢰하고 책장을 넘기는 그 촉감을 즐기기를 원합니다. 오래된 책은 세월이 지나 현대에 그 의미가 퇴색됐다 하더라도 그 책을 접하는 사람에게는 과거를 회상해보고 과거를 즐기는 시간 자체로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은 고서적 박람회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파리통신원 - 임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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