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끝에 스치는 매서운 바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빛으로 가득한 연말의 풍경들. 파리는 올 해도 어김없이 아름다운 빛으로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두 번의 테러로 유난히 슬픔에 젖어있는 날이 많았던 파리 시민들을 위로하듯, 2015년 파리의 연말 장식은 더욱 따뜻하게 빛났습니다.
■ 상처를 어루만지듯 천천히 붉을 밝힌 파리의 연말
매 해, 파리의 거리를 물들였던 크리스마스 연말 장식 행사가 그간 화려하고 활기찬 분위기였다면, 올 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조명은 아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불을 밝혔습니다. 지난 테러 이후, 연말마다 샹젤리제에서 열리던 공식적인 점등 행사는 안전상의 문제로 취소되었고, 11월 말이면 볼 수 있었던 연말 장식들도 한 주 늦게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어두웠던 분위기는 연말 장식과 함께 차츰 밝아졌고, 파리지엥들 또한 다가오는 연말을 맞이하며 얼굴에 미소를 다시 되찾고 있습니다.
비록 늘 주목 받던 마무리 점등 행사는 없었지만, 파리의 연말 장식은 그 어느 때와 다름없이 아름답고 독창적입니다. 특히 파리의 백화점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동심을 자극하는 장식들로 매 해 매스컴을 타고 있는데요. 올 해는 크리스마스의 마법을 보여줄 것 같은 인상적인 연말 장식으로, ‘봉 마르쉐(BON MARCHE) 백화점’이 꼽혔습니다.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눈사람 모양 장식들이 움직이며, 경쾌한 음악이 함께 울려 퍼졌는데요. 이번 연말 장식은 비록 디테일 하거나 화려하진 않더라도,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공감을 주며 가장 크리스마스다운 장식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 독창적인 디스플레이로 눈길을 끄는 파리의 백화점들 |
연말 장식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라파예트 백화점(Galeries Lafavette)’은 올 해 조금 특별한 연말 장식을 준비했습니다. ‘다른 행성에서 온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우주선과 로봇이 가득한 연말 장식이 쇼윈도우를 가득 채웠는데요. 쇼윈도 안에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트리나 루돌프, 산타클로스는 없지만 우주를 상징하는 신비로운 빛과 앙증맞은 로봇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현실을 잠시 잊고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을 안겨 줍니다.
파리 ‘쁘렝땅 백화점(Printemps Department store)’은 가장 빛나는 연말 장식으로 사람들을 이끌고있습니다. 올 해 쁘렝땅 백화점은 개장 150주년을 맞이하여, 핑크색 장미를 테마로 백화점 내부와 외부를 은은하게 장식했는데요. 연말 장식 역시 그 테마를 이어, 꽃들이 활짝 핀 연말 풍경을 표현해내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벌거숭이 나무들이 유독 춥게 느껴지는 겨울, 쇼윈도 안에서만큼은 생생히 피어있는 꽃들과 그 안에서 축제를 즐기는 인형들의 모습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사람들의 미소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백화점뿐만 아니라, 그저 파리의 길거리를 걷는 것 만으로도 연말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고 즐길 수 있을 만큼 파리 곳곳은 따뜻한 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이 빛들은 2016년 새해가 다가오면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겠지만,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빛나는 시간들 덕에 우리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빛을 느끼고 기억하며, 아쉬워하기보다는 지금을 즐기는 파리 사람들. 이 따뜻한 도시의 불빛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기원해봅니다.
- 파리통신원 임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