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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명작 소설/로맹 가리/드라마 비밀 소설] 현대에 재조명되는 화제의 소설 ‘자기 앞의 생’

루이까또즈와 이번 포스팅에서 만나보실 프랑스 명작 소설의 이름은 ‘자기 앞의 생’입니다. 최근 한 인기 드라마의 영향으로 다시 재조명되면서 인기 차트에 진입해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데요. 당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콩쿠르상을 수상한 바가 있는 이 소설은 이와 관련된 다양한 사연들이 함께 얽혀 있어서 당시 많은 관심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자기 앞의 생’의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삶을 예찬하는 소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자신이 10살인 줄로만 알고 있는 14살의 아랍소년 모모의 눈으로 펼쳐지는 소설입니다. 창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모모는 창녀들의 아이들을 도맡아 키우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에 의해서 자라나는데요. 육중한 몸매에 아우슈비츠 수용 당시의 트라우마를 보이는 로자 아줌마를 비롯해서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현명한 하밀 할아버지와 여장 남자 창녀 롤라 아줌마, 은다, 의사 선생 카츠를 주변 인물로 두고 삶을 살아갑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비치는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활과 삶은 초라하고 비참한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진리를 깨달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기가 담겨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이미 주류로부터 소외돼 있다는 것을 주인공 모모는 일찌감치 깨닫지만 서로를 감싸 보듬는 모습은 그의 삶을 지탱하게 되는 큰 힘이라는 것을 발견해가기 시작하는데요. 자신을 키워온 로자 아줌마가 뇌경색으로 몸을 쓰지 못하자 거꾸로 소년이 아줌마를 돌보며 그 힘은 점차 크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사랑을 받고 또 그것을 베풀어 가기 시작하는 소년의 모습은 소설을 접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가슴 한 켠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작가의 촘촘하고 단단한 구성력은 물론, 재치있는 대사와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표현은 깔끔하고 정갈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독자를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감수성과 스토리로 인해 프랑스 문단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자기 앞의 생>은 공쿠르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 현대 소설 <완득이>가 겹치기도 합니다. 에밀 아자르가 보여주는 <자기 앞의 생>이 당시 프랑스에서 하등 시 여겨지는 창녀들이라거나 이주민들, 유태인들의 모습을 소년 관점으로 그려냈다면 <완득이> 역시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들과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가족, 국제결혼으로 시집온 필리핀 어머니,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들과 그 속에 처해있는 자신의 가난. 이 모든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춘기 고등학생의 눈으로 소설이 진행되는 부분은 닮은 면이 있습니다. <완득이>가 현대 소설을 통해서 소년의 건강한 성장기를 보여준다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좀 더 본질적인 인간애와 사랑, 휴머니티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의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소설로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요?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 문단 작가들에게 최고의 찬사와 인기를 얻으며 공쿠르상을 수상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공쿠르상의 수상 영예를 얻게 된 것은 이 소설이 로맹 가리라는 이름이 아닌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맹 가리라는 이름의 작가는 1956년에 이미 <하늘의 뿌리>라는 소설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바가 있는 작가였습니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 진 세버그의 남편이기도 했던 그는 본래 러시아인으로 14살에 프랑스 니스로 이주하여 프랑스인으로 삶을 살아가는데요. 프랑스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군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한 번의 콩쿠르상 수여 이후로 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평가가 반복되기 일수였습니다.

로맹 가리라는 작가에 대한 평가가 저하되고 작품에 대한 가치가 하락하고 있던 그때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의 작가가 등장하여 <대 아첨꾼>이라는 소설로 먼저 큰 호평을 받더니 그 이후 발간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자마자 공쿠르상을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칭찬과 호평 일색이었던 에밀 아자르, 하지만 그 이후 작품 작품을 발간할 때마다 박한 평가를 피할 수 없었던 로맹 가리와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행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돌연 권총으로 자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에밀 아자르는 자신의 유서를 통해서 자신이 로맹 가리와 동일 인물이었음을 밝혀 큰 파문을 일으키기에 이릅니다. 동일 인물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혹평이 또 다른 이름의 누군가에게는 호평이 교차했다는 점은 물론, 콩쿠르상이 관례상 한 작가에게 한 번 이상의 수상이 제한돼 있다는 점에서 혼란스러운 면은 어찌 보면 당연한 부분이었습니다. 한 입에서 쓴 물과 단물이 함께 날 수 없듯 어찌 보면 로맹 가리로 출간된 소설들 역시 호평을 받아 마땅한 부분이 있었겠지만 로맹 가리라는 인물에 대한 배경과 출신 등이 작품의 빛이 바랜 결과를 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로맹 가리라는 이름이든,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이든 작가는 오직 자신의 작품으로만 올바른 평가를 받고 싶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는 물론 현재에서도 TV 드라마를 통해서도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삶이라는 영역의 거창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그 주변의 인물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삶 자체를 자연스럽게 용납하며 그 사랑을 확인해가는 휴머니즘 소설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듯합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오직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자 했던 작가의 마음씨가 소설에 묻어나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