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필력을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스캔들에 둘러싸여 죽은 지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논란과 의문을 지니게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여성문학의 창시자이자 한때는 스캔들의 여왕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조르주 상드를 두고 하는 말인데요. 시대를 대표하는 한 음악가의 마지막 사랑이자 많은 남성들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녀. 하지만 그녀의 진짜 모습은 스캔들에 둘러싸인 시끌벅적한 삶이 아닌 사랑을 좇아 살았던 그저 여린 여성에 불과했습니다.
그녀의 본명, 오로로 뒤팽 |
조루즈 상드의 본명은 오로로 뒤팽. 폴란드 왕실의 후예인 아버지와 첩실 부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유복하고 예술적 조예가 깊은 가문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정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쫓김을 당해 어머니와의 연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손녀를 끔직이 아끼는 할머니의 사랑으로 예술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해 갑니다. 이렇게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시절을 보낸 그녀가 돌연 그 이름을 바꾸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 대신 스캔들과 얽힌 삶을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로로 뒤팽이라는 자신의 이름 대신 조루즈 상드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된 것은 그녀를 지나친 연인 중 한 명인 동거남 ‘졸르 상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오게 된 것은 졸르 상드라는 남성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기보다, 문단에서 떳떳하게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서 여성적인 느낌의 이름이 아닌 남성적인 느낌의 이름이 필요했던 것인데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프랑스 문단에서 여성의 입지는 낮았고, 그로 인해 많은 제약이 뒤따랐기 때문에 이러한 제약에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남성의 이름으로 불린 것입니다.
여성이라는 한계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극복해낸 그녀는 다른 여성작가들보다도 과감하고 도발적인 행보를 이어갑니다. 간혹 중절모를 쓰고 남장을 한다거나 담배를 피우며 남자들 속에서 혁명과 문학을 논하는 모습들이 그녀의 자유분방함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녀의 행보가 독특하고 당대 여성상에서 훨씬 앞선 부분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녀의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인도적이고 이상적이며, 자연친화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어 유럽 문학 중 여성 문학의 창시자로서 또한 프랑스 낭만주의 대표 작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문학성을 두고 생각해 봤을 때 대담하고 거침없으며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신여성적인 면도 있었지만 내면만큼은 여성스럽고 모성적인 면이 깊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성의 연인, 조르주 상드 |
남장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문학 활동을 전개한 조르주 상드는 여성문학을 창시하며 그 누구보다도 활동적인 문학 작품생활을 전개했지만, 그녀의 일생에 수많은 남성들이 지나쳐가며 여성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스캔들과 곤혹스러운 부분들이 적지 않게 겪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조르주 상드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또 누군가에게 헌신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만큼 사랑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던 만큼 상처 역시도 깊게 자리합니다.
상드가 만난 다양한 남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 한 명을 꼽자면 역시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쇼팽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선율을 즉석에서 완성해내며 상드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쇼팽. 하지만 정작 그는 상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병들고 심리적으로 나약해진 쇼팽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의 마음에 위로와 안식을 주고 그녀에게 의지하고 싶은 모성을 느낀 쇼팽도 끝내 마음을 열게 됩니다. 상드의 나이 36세. 쇼팽의 6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쇼팽을 위해 함께 요양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쇼팽의 육체적, 심리적 안정에 온갖 힘을 기울이게 되는데요. 실제로 결핵으로 심한 질병에 시달리던 쇼팽은 상드를 만난 이후 눈에 띄게 호전됐고, 상드와 사랑에 빠진 시간 동안에 <빗방울 전주곡>, <마주르카>, <녹턴> 등의 명곡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 누나 틈에서 자라난 쇼팽은 여성적이고 소심하고 여린 성격이었던 만큼 직설적이고 남장을 즐기며 가끔은 대범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상드는 그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였을 지도 모릅니다. 상드는 쇼팽에게 예술적 영감과 사랑, 그리고 안식처와 같은 역할이 됐음은 분명하지만 결국 지고지순하고 헌신적이였던 그녀는 또 한 번 사랑에 지쳐 편지 한 통으로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조르주 상드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엇갈립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상드에 대해 추잡한 여자라며 맹비난을 쏟기도 했고, 또는 가장 인기 있는 다작 작가로서의 명성이 교차했는데요. 작품과 문학계에서 개성 있고 그 어떤 작가들보다도 과감하게 행동했던 그녀는 사랑에있어서는 지고지순하고 헌신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그녀는 자기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가고, 그 길을 개척해내며 자신의 감정 앞에 솔직했던 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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