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렸던 제 65회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홍상수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와 임상수감독의 <돈의 맛>이 초청을 받아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수상을 뒤로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영화가 나란히 위상 높은 프랑스 칸 영화제에 꾸준히 등재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한국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내의 이 두 ‘상수’감독들처럼 프랑스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두 명의 영화감독, 프랑수와 트뤼포와 장 뤽 고다르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은 누벨바그의 여러 감독 중 가장 그 존재감을 일찍 대중들에게 알린 인물입니다. 당시 유명했던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의 제자로 고다르와 함께 누벨바그에 속해있던 트뤼포는, 그의 스승이 창간한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ema>에 직설적이고 신랄한 비평글을 기고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라는 첫 영화로 1959년 제 12회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아이는 400번의 매를 들어야 올바르게 자란다’라는 속담에서 출발한 영화 <400번의 구타>는 트뤼포 감독의 어린 시절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앙투안 두아넬’이라는 소년으로 재탄생 한 그의 어린 시절의 모습은, 부모님께 버림 받고 소년원을 들락거리는 등 어두운 모습으로 가득한데요. 그는 영화 <400번의 구타> 이후에도 앙투안 두아넬을 주인공으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를 4편 더 제작함으로써 상처받은 10대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고, 이들의 모험과 이상을 영화 속에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당시 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한 <400번의 구타>는 세련된 촬영기법과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인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어 자신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피아니스트를 쏴라>, 그만의 사랑과 정치의 연관관계를 조명한 <쥴 앤 짐> 등 예술성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며 누벨바그의 거장감독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52세의 이른 나이에 병을 얻어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트뤼포의 작품은 많은 영화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데요, 현재에도 국내배우나 영화감독들이 추천하는 ‘꼭 봐야 할 영화 리스트’에 오르는 등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벨바그에서 트뤼포와 경쟁자라기 보다 동료에 가까웠던 장 뤽 고다르 감독은, 마찬가지로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영화비평가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트뤼포와 독학으로 영화를 배운 고다르는 1960년 영화 <네 멋대로 해라>로 프랑스 영화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는데요. 기존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소위 고다르 감독의 독특한 가치관을 따라 만들어진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난해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게 됩니다.
소위 ‘차가운 도시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인 <네 멋대로 해라>는 처음 개봉 당시 스토리와 촬영기법 등 영화 제목처럼 감독 마음대로 만들어졌다는 비평을 받았습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사를 말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카메라가 주인공을 대화를 엿듣는 듯한 영상과, 갑이 동문을 하면 을은 서답을 하는 등의 복잡한 영화의 흐름은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기술적인 화려한 기법보다는 즉흥에서 꾸밈없이 촬영된 고다르 만의 독창적인 영상의 미학을 발견하게 되고, 고전이라는 큰 울타리를 가뿐히 벗어나 버리는, 말 그대로 누벨바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상징적인 가치를 가진 영화로 자리잡게 됩니다.
<네 멋대로 해라>로 제 10회 베를린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한 고다르는 이후 계속적인 실험적인 요소들과 그의 다양한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한 영화들을 세상에 내놓게 되는데요, 트뤼포가 실험적인 영화로 큰 실패를 맛본 후 안전함과 대중성을 고려해 영화를 제작했던 점에 반해, 고다르는 ‘영화는 삶 자체이다. 그것은 말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살아져야 하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말처럼 화려한 볼거리 위주의 영화를 찍는 것보다 끊임없이 삶을 성찰하고 개척하는 영화에 의미를 두게 됩니다.
프랑수와 트뤼포가 영화비평잡지에 처음으로 사용한 영화용어, 작가주의. 이 한 단어로 누벨바그에서의 이 둘의 역할과 세계 영화사에 끼친 영향을 함께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작가주의란 말은 그대로 ‘한편의 영화에서는 감독이 곧 주인이자 작가이며, 그 작가의 생각이 그대로 영화 속에 드러나야 한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요. 이런 작가주의를 바탕으로 트뤼포는 실제적 현실과 감독의 자아를 반영하되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느낌과 대중성을 고려했던 것에 반해, 고다르는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한 개성적인 영화로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누벨바그 속 감독들은 자신만의 이상이 녹아있는 작가주의를 바탕으로 영화사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2009년에는 엠마누엘 로랑 감독의 다큐멘터리 ‘누벨바그의 추억(Two In The Wave)’을 통해 이 두 거장의 필모그래피와 관련자료들이 재조명되었는데요. 이 다큐의 영문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두 물결(wave)이었던 감독 트뤼포와 고다르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영화계를 아우르며 서로에게 선의의 라이벌, 또는 둘도 없는 조언자로서 누벨바그의 대표적 인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 에피소드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영화 <아메리카의 밤>에 감독이자 실제 감독역할로 출연했던 트뤼포가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고다르가 나오는 장면을 삭제해버림으로써 둘은 사이를 의절할 정도로 크게 다투기도 했었는데요. 하지만 트뤼포가 이른 죽음을 맞이하고, 후에 발간 된 트뤼포의 <서한집>의 서문에서 고다르는 ‘프랑수아(트뤼포)는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난 아마도 살아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라는 그를 향한 우정 어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세계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시작으로 현재의 프랑스영화가 있기까지, 약 120년에 다다르는 세월 동안 수 많은 작품이 탄생하며 세계 영화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는데요. 1950년 대 후반부터 1960년 대 절정에 이르렀던 프랑스 영화운동(이하 누벨바그) 또한 영화사의 중요한 지표로 볼 수 있습니다. 누벨바그란 ‘새로운 물결(New Wave)’라는 뜻으로, 한 주간지의 기자가 새로운 프랑스 영화계를 이끌어갈 신인감독을 지칭하는 말로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누벨바그의 시작점, 프랑수와 트뤼포
끊임없는 실험정신, 장 뤽 고다르
작가주의 속 감독의 세계
프랑스영화의 천재 영화감독, 거장, 선구자 등으로 불리 우는 이 두 감독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달성하기까지 그 들의 목표의 주제는 단 한가지, 영화였습니다. 트뤼포와 고다르를 포함해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많은 이들의 삶이 녹아있기에 3D, 4D 영화 등 새로운 영화가 등장하고 평범한 문화생활로 영화가 우리 곁에 가까이 자리잡게 된 요즘,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을 위해 트뤼포와 고다르 감독의 흑백 영화 두 편을 같이 감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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