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이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은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요. 이 둘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입니다. 얼마 전 SBS <런닝맨>에서 ‘셜록 홈즈 특집’으로 홈즈와 뤼팽의 대결을 그려내 호평을 받기도 했는데요. 아서 코난 도일과 모리스 르블랑은 바로 이 두 주인공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을 탄생 시킨 작가들입니다. 홈즈 시리즈와 뤼팽 시리즈는 탐정과 도둑이라는 라이벌 구도를 넘어, 영국과 프랑스라는 국가간의 자존심 대결이 되기도 했는데요. 라이벌 구도의 발단에 한 쪽의 의도적인 고의성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여전히 세계적으로 팬덤을 보유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라이벌로 남겨진 홈즈와 뤼팽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금 공개합니다.
180이 조금 넘는 키에 마른 몸집, 돌출된 턱과 매부리코에 날카롭고 반짝이는 눈을 지닌 인물로 뛰어난 관찰력과 치밀하고 냉정한 분석력으로 보통사람의 두뇌를 뛰어넘는 수사력을 보여주는 탐정 셜록 홈즈. 파이프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탐정모자는 그를 상징하는 물품이자 도구이죠. 셜록 홈즈는 1887년 <주홍색 연구>로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천재적인 수사 능력을 지닌 명탐정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갸름한 얼굴, 사람을 흘겨보는 듯한 명민한 눈초리를 지닌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미남 신사이자 부자의 재물을 털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의로운 도둑입니다. 아르센 뤼팽은 변장의 달인으로 자유자재로 가명을 사용하며 신분을 숨기고 키를 늘이고 줄이는 등의 초인적인 변장술을 발휘했습니다. 더불어 언제나 훔치기 전에는 등장을 예고하는 깜찍한 매너도 갖추었는데요. ‘3일 후 당신의 집을 털러 오겠소.’ 라는 식의 예고 쪽지를 남기고도 잡히지 않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가는 그의 신출귀몰함에 사람들은 점점 매료되었습니다. 이는 시대적으로 절대권력에 억압돼 있던 시민들이 뤼팽의 행동에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프랑스인들은 점차 명탐정 셜록 홈즈를 뒤로하고 매력적인 도둑 아르센 뤼팽에 열광하기 시작, ‘뤼피니앵’이라는 팬덤을 형성하며 뤼팽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습니다.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은 불꽃 튀는 라이벌 구도를 갖추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팬들을 양산했습니다. 탐정과 도둑이라는 주인공의 대립과 독자의 호불호에 따른 팬덤 형성을 넘어 영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써 국가간의 자존심 대결로 비춰지기도 했는데요.
암암리에 기싸움을 벌이고 있던 홈즈와 뤼팽의 라이벌 구도에 불을 지핀 것은 <기암성>부터 입니다. 1909년 모리스 르블랑이 출간한 <기암성>에 바로 셜록 홈즈가 등장했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묘사된 홈즈는 작은 키에 뚱뚱한 몸집으로 코믹하게 등장하여 번번이 뤼팽에게 패배하는 캐릭터로 등장했고, 프랑스인들은 알게 모르게 통쾌함을 느끼게 됩니다. 후에 심지어 홈즈가 뤼팽의 연인을 살해하는 이야기 전개가 펼쳐지면서 프랑스인들은 홈즈를 대놓고 적대시하기 시작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영국 국민들은 ‘엉터리 홈즈를 만들어내 일부러 흠집을 내고 있다’ 며 불만을 강하게 표출했고, 이로 인해 홈즈와 뤼팽의 라이벌 구도는 팽팽한 접전을 이루게 됩니다.
<셜록 홈즈>를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은 <아르센 뤼팽>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홈즈가 등장하자, ‘내 주인공이자 분신인 홈즈를 다시는 등장시키지 말라.’ 며 모리스 르블랑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에 모리스 르블랑은 ‘나는 홈즈 소설이 있는 것 조차 몰랐다.’고 부인했지만, 자신의 소설에 등장한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를 철자를 바꾸어 에를록 숄메즈(Herlock Sholmes)로 바꾸어 출간했는데요. 이는 영어로 헐록 쉬어즈, 헐록 숌즈 등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더 이상 셜록 홈즈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이를 셜록 홈즈로 받아들였고, 홈즈냐 뤼팽이냐, 뤼팽이냐 홈즈냐에 대한 라이벌 구도는 팽팽하게 지속되었습니다.
명탐정 셜록 홈즈
당시 낭만주의 소설에 싫증이 나있던 영국 국민들은 암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담뱃재나 발자국 식별등 뛰어난 관찰력으로 수사를 이끌어내는 홈즈에 매료되었는데요. 영국의 왕 에드워드 7세는 셜록 홈즈를 ‘법과 정의의 대변자’라고 일컫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영국 국민들은 실제 경찰과 비교하면서 홈즈의 수사 해결 능력과 범인 잡는 능력을 추앙했는데요. ‘홈지언’ 또는 ‘셜록키언’이라 일컬어지는 팬덤을 형성하면서 셜록 홈즈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뻗어나갔습니다.
정의의 도둑 아르센 뤼팽
셜록 홈즈 vs 아르센 뤼팽
두 작가는 생애 단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하지 않은 채 1930년 아서 코난 도일 사망한 데 이어 1941년 모리스 르블랑이 사망함으로써 어떠한 타협이나 화해도 없이 끝나고 말았는데요. 지금까지 이 둘의 라이벌 구도는 팽팽하게 이어져 오고 있죠.
의도된 출격, 아르센 뤼팽
모리스 르블랑은 <셜록 홈즈>라는 소설이 존재하는 지도 몰랐다며 부인했었지만, 뤼팽 소설에 셜록 홈즈가 등장한 것은 철저히 의도된 일이었습니다. 출판사 편집장인 피에르 라피트가 흥행을 목표로 한 고도의 전략의 일환으로 <아르센 뤼팽>에 홈즈를 등장시킨 것이죠. 사실 <아르센 뤼팽>은 제작 당시부터 <셜록 홈즈>를 염두해 두고 이를 추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자 소설이었습니다. 영국의 홈즈가 세계적으로 인기 고공행진을 할 당시 모리스 르블랑이 영웅이야기를 꾸준히 준비해 온 것을 알았던 피에르 라피트 편집장은 홈즈에 대항할 인물을 만들어내도록 부추겼고, <아르센 뤼팽>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은 단순한 탐정과 도둑의 캐릭터를 넘어 쫓고 쫓기는 관계로 따로 또 같이 지금까지 꾸준히 출판되고 영화화되면서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모리스 르블랑과 아서 코난 도일은 그 어떠한 대결이나 화해도 없이 관계를 마무리 하고 말았지만,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의 대결은 지금까지도 대중들의 애정 안에서 대립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기를 위한 의도적인 출간이든 고의적 추종이든, 모리스 르블랑은 홈즈 덕에 <아르센 뤼팽>을 남길 수 있었고, 아서 코난 도일은 뤼팽 덕에 <셜록 홈즈>를 더욱더 견고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작가 둘의 대면식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 일이지만, 그들의 대립으로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 홈즈와 뤼팽이라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남겨지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culture > frenchinfr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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