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프랑스의 통치자 나폴레옹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나폴레옹의 시대를 종식시킨 영국의 웰링턴은 각 국의 통치자이자 전략가입니다. 이 둘은 1769년 동갑내기로 각 나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표자이자 라이벌 관계인데요. 역사 속의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폴레옹, 프랑스의 히어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변방 코르시카 출생으로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왔다가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동료들과 출신이 달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화합되지 못한 채 외로운 나날을 보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의 모든 병법을 독파하며 충실한 학교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네트워크와 인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일찍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요. 24세에 혁명군 포병 대위로 툴룽항 싸움에서 공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26세의 나이에 파리의 폭동을 진압하면서 장군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이탈리아 원정, 이집트 원정을 떠났고 파리로 돌아와 제1통령 이라는 지도자의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30세였는데요. 황제로 등극한 이후 유럽의 절반을 제패하고 교육, 종교, 문화, 법률 등 오늘날 프랑스의 초석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후 러시아 원정 실패와 워털루전쟁의 패배로 나폴레옹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지만, ‘전쟁의 천재’, ‘시대의 영웅’으로 남게 됩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그는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영웅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콤플렉스
‘나폴레옹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등감에 대한 보상 심리로 공격적이고 과장된 행동을 하는 강박 관념을 일컫는 말인데요. 앞서 언급한 듯 나폴레옹은 보잘것없는 가문의 시골뜨기였고 외모도 160cm이 채 되지 않는 단신이었습니다. 그런 강박을 이겨내고 악착같이 노력하여 황제에 자리까지 오르게 된 나폴레옹. 이에서 유래한 나폴레옹 콤플렉스는 자신이 갖는 열등감에 대한 보상 심리로 자신의 지위와 품격을 고양시키기 위해 더욱 더 분발하려는 심리 또는 매사 호전적이고 격렬하게 반응하는 심리를 의미합니다. 최근에는 나폴레옹의 키에 포커스를 맞추어 키가 작은 남자들의 열등감의 표현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웰링턴, 영국의 자존심
거만하고 독재적인 성격이었지만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했던 그는 치밀한 계획으로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였던 ‘워털루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영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이 후에 그는 영국의 총리로 임명되면서 정치가로서 활약하였는데요. 특유의 독재적인 군인 기질로 시민의 따가운 시선도 받았지만, 그는 카톨릭교 해방이라는 업적을 남기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전략가이자 정치가로서 칭송 받고 있습니다.
웰링턴 장군의 5분
한번은 어느 고관과 런던 다리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웰링턴 장군은 정시에 약속장소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고관은 5분이 지나서야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장군은 시계를 보면서 "5분이나 늦었군."하고 불쾌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각한 고관은 "각하! 겨우 5분밖에 늦지 않았습니다."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웰링턴은 "겨우 5분이라고? 그 시간 때문에 우리 군대가 패전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요? 5분의 시간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이요."라고 대꾸했습니다.
얼마 후에 웰링턴 장군이 그 고관과 또 만날 일이 생겨 시간 약속을 했습니다. 그 고관은 지난번의 일이 생각되어 5분 일찍 나와서 장군을 기다렸습니다. 시간을 맞춰 도착하는 웰링턴 장군에게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장한 일을 했다는 듯 말했습니다. "각하!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제가 5분 일찍 나왔습니다." 그러자 웰링턴 장군은 이번에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5분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군요. 5분이나 일찍 왔으니 당신은 아까운 5분을 낭비하고 만 것이지요!"
이는 시간의 소중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지금까지도 언급되는 웰링턴 장군의 에피소드입니다. 그는 이처럼 시간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치밀했습니다.
워털루전쟁, 운명을 결정짓다
1815년 벨기에 남동부의 한적한 평원인 워털루(Waterloo)에서 유럽의 운명을 결정짓는 한판 승부가 펼쳐졌습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7만2천명과 웰링턴이 이끄는 유럽연합군 6만8천명이 맞붙었습니다.
치밀한 전략가였던 웰링턴은 워털루 언덕을 방어거점으로 선택해 나폴레옹의 공격을 기다렸습니다. 오전 11시 프랑스군의 포격으로 시작돼 프랑스군은 공격, 영국군은 방어하는 형국으로 진행됐는데요. 오후 6시 나폴레옹은 마지막 승부수로 불패의 근위대를 출격시켰으나 이틀 전 퇴각했던 프로이센군 4만8천명이 영국군에 합류하면서 전장의 양상은 단번에 바뀌게 되었고, 이 전쟁이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가 되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나폴레옹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작은 키에 가진 것도 없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 나폴레옹과 귀족 출신에 탄탄대로를 걸었던 웰링턴은 얼핏 너무도 달라 보이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군인으로써 본분에 충실했고, 한 나라라는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선 홀로 씩씩하게 나아갔던 영웅에 가까운 인물들이라는 것에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국에서는 나폴레옹과 웰링턴을 두고 영웅으로 칭송하는 시선과 독재자로 치부하는 시선이 교차되지만, 그들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이라는 점에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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